서구 덕흥로 312(덕흥동)극락강변에 유유자적하며 금성錦城(나주) 송암거사 오길주吳吉柱가 지냈던 곳이나 지금은 금성오씨 재각인 덕호재德湖齋로 대신하고 있다. 학사 민병한閔丙漢이 쓴 기문이 『조선환여승람』(1935)에 남아 있어 이 이전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후손인 오동수吳東洙의 찬기가 있다.지금은 빨간 벽돌
서구 덕흥동 454-1덕흥마을 야트막한 35m 정도의 덕산德山 꼭대기에 있는 정자를 덕흥정德興亭이라 한다. 여기엔 서구청 보호수인 덕흥동 느티나무가 수령 450세 정도이다. 흉고는 557cm, 높이는 약 22m이다. 250여년 전부터 동작의 상당인 할머니 당산나무로 신격화되어 덕흥마을의 수호신 역할을 했다.덕흥마을의 당산은
서구 치평동만전당晩全堂은 서구 치평동과 덕흥동에 걸쳐 있는 지역인 극락면 평촌리에 평강平康 채두영蔡斗永이 지어 지냈던 정자이다. 『조선호남지』(1935) 권2에 실려 있다. 채두영의 아들 채동연蔡東延(1825~1883)은 1879년 생원시에 합격했고 전북 군산의 임피臨陂에서 살았다.평강 채씨는 강원도 평강군을 본관으로
서구 덕흥동 오로정五老亭은 조선환여승람(1938)에 노헌老軒 최성장崔性璋, 노암老菴 정재진鄭在鎭, 노와老窩 정인석程寅錫, 노재老齋 조정섭曺正燮, 노당老堂 유동석劉東錫 5인들의 소요처였다. 언제 지어진 것인지는 모르나 『조선환여승람』(1935)에 전하고 있다. 다섯 사람 호의 앞 글자를 다서 오로정이라 했다.오로정
광천동 광천동의 유래와 연혁광천동은 일제 때의 광천정光川町을 1947년부터 고쳐 부른 이름이다. 엣날에는 광주천가에 새로 방죽을 쌓았다고 해서 새방천 혹은 신방천이라 부르기도 했다. 조선후기 기록인 『여지도서』 및 『호구총수』에 따르면, 현 광천동 지역은 광주목 군분면軍盆面에 속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언젠가 ‘고산자 대동여지도’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영화 속 주인공은 지도에 목숨 걸고 지도 때문에 딸도 잃는 일들이 벌어진다. 지도는 문물이 소통하며 사람이 소통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자리매김했다. 오늘날 위성지도나 내비게이션 등으로 길 찾는 일이 쉬워지긴 했으나 여전히 지도는 중요하다. 우리나라 지도는 삼